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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나 마법학원

프롤로그 속 장면 1: 에버라이트

1 / 8 챕터

아버지의 묵직한 오크목 지팡이는 공기를 가르며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 끝은 완벽한 타원을 그리며 허공에 빛의 궤적을 남겼다. 빨강, 파랑, 초록, 노랑. 네 가지 빛이 지팡이 뒤를 따라 흩어지며 마치 황홀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빛 조각들은 흩어지며 사라지지 않았다. 공중에서 천천히 빛의 가루로 내려앉으며 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그 빛들이 지나간 자리엔 은은한 잔상이 남아, 마치 무지개가 떠 있는 듯했다.

지팡이를 휘두를 때마다 그의 동작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찼다. 단 한 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지팡이 끝의 촉매석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공기를 헤치고 나아갔다.

그 광경은 바로 앞 통나무 의자에 앉아 있던 내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햇살이 스며드는 푸른 들판 위에서 펼쳐진 아버지의 시전술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선 예술이었다.

내 옆에서는 마이라가 자리에서 들썩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서 주워 온 나뭇가지를 지팡이처럼 그러쥐고, 아버지의 동작을 따라 하려는 듯 팔을 휘저으며 외쳤다.
“합!”
마이라의 작은 팔이 빛을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의 동작은 아버지의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가 팔을 너무 크게 뻗는 바람에 나뭇가지 끝이 내 쪽으로 뻗어 왔고, 나는 급히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어이쿠!”

그 순간, 마이라가 두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아빠! 무지개 만들어줘!”

아버지는 잠시 멈춰 서서 마이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스쳤다. 햇살을 받아 드러난 그의 얼굴 한쪽에는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그 흉터는 그의 표정을 더 강인하고 인상적으로 보이게 했다.

아버지는 천천히 지팡이를 아래로 내렸다. 가벼운 숨을 고른 뒤, 양손으로 지팡이를 단단히 쥐고 몸을 뒤로 젖혔다. 그의 움직임에는 단호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했다.

푸른 기운이 지팡이를 감싸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번—쩍!

지팡이가 그려낸 곡선 위로 무지갯빛 섬광이 찬란하게 퍼졌다. 섬광은 한순간 빛났다가 사라졌지만, 그 잔상은 하늘에 그려진 그림처럼 강렬했다. 빛의 파편들은 잔잔히 허공을 떠돌며 주변을 물들였다.

“우와아아!”
마이라는 이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이는 빛을 담은 채 아버지를 향하고 있었다.

“아빠~ 최고야! 진짜 멋있어!”
마이라의 목소리는 들판 위를 가로질러 멀리 퍼졌다.

아버지는 딸의 환호를 흘끗 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하지만 이내 진지하게 지팡이를 내려놓으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크! 마이라! 아빠 데리고 들어와. 식사 시간이야!”

마이라는 여전히 들뜬 표정으로 무지갯빛 섬광을 흉내 내며 이리저리 뛰었다. 그녀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루크! 빨리 가자!”

나는 그녀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하늘은 점점 더 깊은 푸른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들판 위에 남은 빛의 잔상들이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에버힐 마을

우리가 사는 곳, 에버힐은 작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우리 가문인 에버라이트 가문은 이 마을의 오래된 귀족 가문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다.

아버지 칼렙 에버라이트는 단순히 뛰어난 시전 실력만으로 존경받는 게 아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항상 가장 먼저 나섰고, 에버라이트 가문은 마을 사람들에게 강하지만 따뜻한 지배자이자 보호자였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단순히 귀족으로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웃처럼, 친구처럼 우리를 가까이 여겼다. 매년 수확제가 다가오면 에버라이트 저택의 뜰은 마을 사람들로 가득 찼고, 어머니가 연금술로 준비한 선물들과 아버지의 무용담은 언제나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다.

에버힐 마을 자체는 우리 가족과 마찬가지로 평화로웠다. 낮에는 햇살이 언덕 위로 따스하게 내려앉았고, 저녁이면 개울이 졸졸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숲의 나무들은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물들었고, 바람이 불면 들판의 밀밭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우리 집은 마을 가장자리, 숲과 가까운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집 앞마당에는 아버지가 손수 만든 나무 의자와 작은 화단이 있었고, 화단에는 어머니가 심어놓은 들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귀족의 저택이라 부르기엔 아담했지만, 그 소박함이 우리 가족의 따뜻함과 어울렸다.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가 지팡이를 휘두르는 모습을 종종 보고 싶어 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마치 전설 속 영웅이 된 듯한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내게도 작은 영광이었다.

오크나무로 만들어진 에버라이트 저택의 출입문은 가문의 상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태양과 무지개의 조화로 이루어진 문양은 가문이 가진 따뜻함과 품위를 상징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널찍하면서도 검소한 복도가 나타났고, 양쪽 벽에는 에버라이트 가문의 선대와 부모님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몇 걸음 더 들어가니 집의 중심지인 식당이 보였다.

에버라이트 저택

“자, 자!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이 엄마의 스튜가 금방 나올 거예요!”
어머니 엘레아나 에버라이트는 온화한 갈색 눈동자와 짙은 청색의 머리칼을 가진 분이셨다. 나는 그녀의 갈색 눈을 닮았고, 여동생 마이라는 반짝이는 머리칼을 물려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 눈동자를 두고 "보석처럼 빛난다"고 칭찬하곤 했다.

나는 마이라와 함께 긴 린넨으로 덮인 오크나무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으..” 그 순간, 내 몸이 갑자기 떨려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움츠렸고, 어머니는 요리를 멈추고 즉시 이쪽을 바라보았다.
“루크?”

어머니는 조용히 다가와 내 상태를 살피더니, 아까부터 걸쳐놓았던 자신의 스카프를 벗어 내 어깨에 덮어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밖에서 오래 있었던 거 아니야? 이런 날씨에 밖에 오래 머무르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했니.”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는 이미 단호하면서도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내 어깨를 살짝 감싸며 마치 내가 추위에라도 얼어버릴까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단다. 그때 사고가 얼마나 큰일이었는지 너도 알잖니. 그러니까 조금만 더 신경 써야 해.”
“어머니, 저 괜찮아요. 정말로요.”
“괜찮다고 하기엔 네 얼굴이 창백하잖니.”

어머니는 손등으로 내 이마를 짚어보더니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내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라고 자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나와 어머니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던 마이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오빠, 연금술을 배우면 오빠도 건강해질까?”

나는 그녀의 엉뚱한 질문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 건강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연금술로 더 따뜻하게 만들 수는 있을 거야.”

마이라는 내 대답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연금술을 배워서 오빠를 따뜻하게 해줄게!”

나는 마이라의 당찬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침묵에 잠긴 듯 보였다. 그녀의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깊은 생각에 잠긴 흔적이 엿보였다.

그러다 어머니는 천천히 손을 들어 내 어깨에 얹으며 조용히 말했다.
“루크,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막고 싶지는 않아. 연금술을 배우는 것도, 네 꿈을 이루는 것도 다 응원할게. 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네가 먼저 몸부터 챙겨야 한단다. 네가 건강해야 엄마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어.”

그녀의 손길은 따뜻했지만, 그 속에 담긴 걱정은 무겁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눈빛은 나를 응원하면서도 어딘가 슬퍼 보였다. 나는 그 눈빛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어머니. 걱정 끼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어머니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끝에 담긴 힘은 여전히 나를 놓지 않으려는 듯했다.

그때 저벅저벅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식당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아버지를 올려다보았지만, 어머니는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칼렙, 당신은 또 진흙 묻은 신발을 신고 들어왔군요!”
아버지는 순간 흠칫하며 멈칫했다가, 민망한 듯 손을 머리에 얹고 웃었다.
“아, 미안! 잠깐 깜빡했네.”
그는 황급히 바깥으로 나가 신발을 갈아신고 돌아왔다. 어머니는 흙 자국이 남은 카펫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당신이 청소하세요. 사용인들한테 맡기지 말고요.”
“알겠어! 이 정도쯤이야 당연하지.”
아버지는 씩 웃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식당 한쪽 벽에는 큰 흰 창이 나 있었고, 창 밖으로 펼쳐진 들판과 숲의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은 식탁 위 은색 촛대를 반짝이게 비추고 있었다.
“마이라, 지팡이 휘두르는 게 그렇게 재미있니?” 내가 물었다.
“응! 오빠도 같이 배우면 좋을 텐데!”
“나는 지팡이를 드는 것만으로도 벅차. 대신 연금술을 배우면 너한테 지팡이를 만들어줄게.”
“정말? 아빠 지팡이처럼 멋지게 만들어야 해!”
“그럼. 기다려봐.”
마이라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고 연신 흔들었다.

“도련님, 아가씨, 뜨거운 음식 조심하세요.”
어머니 옆에서 요리를 돕던 사용인이 스튜와 신선한 빵이 담긴 그릇을 식탁 위에 놓았다. 우리 집은 귀족 가문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품 덕에 사치를 멀리하고 낭비를 삼가는 분위기였다. 요리도 딱 알맞은 양만큼 우리의 앞에 놓였다.

어머니는 앞치마를 벗고 마이라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버지가 커흠, 헛기침을 하더니 대화를 시작한다.
“루크, 너도 이제 곧 열 살이 되고, 마이라도 벌써 여덟 살이 됐으니, 연금술 공부를 시작해야겠지.”
그 말을 듣자 내 마음속에 설렘이 가득 찼다. 마이라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포니테일을 흔들며 눈을 반짝였다.
“마이라, 식사 중에는 얌전히 있어야지.” 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혔다.

“아버지, 저희가 아버지와 어머니께 배우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그렇지. 나와 엘레아나도 너희를 가르칠 것이다. 하지만 더 훌륭한 선생님을 초대했단다.”
“누군가요? 아버지보다 훌륭한 연금술사가 있다고요?”
마이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내 오랜 친구, 엘리오 플라메스다. 내일 이 집에 도착할 거야.”
“엘리오 선생님이라니! 정말 대단한 분이 오시는군요.”
어머니도 놀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분은 왕국, 아니 대륙에서도 가장 뛰어난 연금술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흥, 아빠보다 뛰어나다는 말은 믿기 힘든데.”
마이라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내일 선생님 앞에서는 그렇게 굴지 말도록 해.”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식당은 가족의 대화로 따뜻하게 가득 찼고, 창 밖의 평화로운 풍경은 우리가 지닌 행복을 더 돋보이게 했다.

하루가 지난 다음날 오후, 햇살이 여전히 따사롭게 비추는 시간에 아버지가 예고했던 방문객이 도착했다. 나와 마이라는 대륙 최고의 연금술사를 보기 위해 저택 입구로 향했다.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
마이라는 툴툴거리며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걸 보면 그녀 역시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택 입구에는 이미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서 엘리오 선생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우리를 발견하자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루크, 마이라. 엘리오 선생님께 인사드리렴.”

나는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엘리오 선생님. 저는 칼렙 에버라이트와 엘레아나 에버라이트의 첫째 아들, 루크 에버라이트입니다.”

마이라도 뒤이어 인사를 해야 했지만, 그녀는 팔짱을 끼고 눈을 흘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흥.”
“마이라!”
어머니가 그녀의 등을 가볍게 건드리며 주의를 줬다.

엘리오 선생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칼렙에게 너희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반갑다.”

엘리오 선생님은 아버지와 동년배라 했지만, 외모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 얼굴에 깊고 차분한 눈빛을 가진 그 사람. 나는 단순히 "젊어 보인다"는 표현으로 그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나이로 드러나지 않는 지혜와 경험이 담겨 있었고, 희끗한 머리칼과 절제된 표정은 마치 이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을 풍겼다.

“엘리오, 정말 오래간만이군.” 아버지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고. 여기 머무는 동안 내 집처럼 편히 지내면 좋겠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엘리오는 사용인을 따라 짐을 풀러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마이라도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마이라, 엘리오 선생님 어떤 것 같아?” 내가 물었다.
“흥, 몰라.” 그녀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잠시 뜸을 들인 후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솔직히 우리 아버지보다 좀 더... 음... 아름다우신 것 같기도 하고...”
“아니야! 절대 아니야!”
마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하게 부정하며 내 말을 끊었다.

사실, 나도 아버지가 아름답다는 말은 쉽게 하기 어렵다. 강인한 체격에 깊고 탁한 눈빛을 가진 아버지는 처음 본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인상을 주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전술은 그 무엇보다도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그래도 아버지의 시전술만큼은 누구보다 아름답지 않니?”
내가 말했다.
“그치, 그치!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마이라는 기분이 좋아진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엘리오 선생님도 굉장한 분 같아. 아버지가 대륙 최고의 연금술사라고 했잖아.”
“그건 두고 봐야지. 난 들어갈래.”

저택 입구에 다다르자마자 마이라는 2층 자신의 방으로 후다닥 뛰어 올라갔다. 그녀는 여전히 아버지보다 뛰어난 연금술사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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